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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한켠

죽을 만큼 힘들어도 웃으라는 말, 그건 과학이었다

웃음, 장 건강, 커피 한 잔까지… 뇌 과학으로 본 일상의 숨은 코드

 

글|김종수 / 바이오메디컬공학 박사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한 거다.”
언뜻 들으면 낭만적인 말 같지만, 이 말에는 과학적 실마리가 숨어 있다.
억지로라도 웃어보라는 조언이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뇌를 자극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면?

 

매년 3월 셋째 주는 ‘세계 뇌 주간’이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는 이 기간 동안 뇌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다양한 캠페인과 강연이 진행된다. 인공지능 기술이 일상으로 스며든 요즘, 인간의 뇌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 글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말들과 행동을 뇌 과학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뇌 여행’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웃으면 정말 행복해질까?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그래도 웃어보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정신 승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과학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뇌는 웃음을 감지하면 실제로 긍정적인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표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인간은 문화와 무관하게 기쁨, 분노, 놀람, 혐오, 두려움, 슬픔과 같은 기본 감정을 공통된 표정으로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행복하면 자연스레 웃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웃는 표정이 실제 감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

1988년 독일의 심리학자 프리츠 슈트라크는 간단하지만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볼펜을 물게 하여 얼굴 근육을 조절하게 한 뒤, 같은 만화를 보여주었다. 웃는 표정을 유도한 그룹이 만화를 더 재미있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뇌 과학자 제임스 코안은, 거울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피험자들에게 얼굴 근육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그때의 뇌파 반응을 측정했다. 웃는 표정을 지을 때, 실제 긍정적인 감정 상태와 유사한 뇌파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표정이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웃음이 단순한 반응을 넘어, 감정을 이끌어내는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차나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뇌 과학은 어떤 학문일까?

“뇌 과학이 뭔가요?”
한국에서는 이 질문에 이어 “그럼 의사 선생님이세요?”라는 반응도 자주 따라온다. 아직 기초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뇌 과학은 단순한 의학이 아니다.

뇌 과학은 인간의 뇌 구조와 기능, 그리고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과 감정을 유도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감정, 사고, 기억, 움직임 등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 뒤에는 뇌의 활동이 존재한다.

 

뇌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뇌의 활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된다. 크게 비침습적(Non-invasive) 방법과 침습접(Invasive) 방법으로 나뉜다.

비침습적 방법은 뇌에 물리적 손상을 주지 않고 두피 위에서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거나, 뇌혈류의 변화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로 뇌파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이 있다.

반면 침습적 방법은 수술을 통해 뇌 표면에 센서를 부착하거나, 미세한 칩을 삽입해 직접적인 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보다 정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신체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측정 기술을 통해 과학자들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느낄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뇌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아이스크림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배탈 난다.”
“찬물 마시지 마라, 탈난다.”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단순한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최근 뇌 과학은 이 오래된 조언에 새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 바로 몸의 상태가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신경세포는 뇌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몸 안에는 뇌 못지않게 중요한 신경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특히 소화기관인 장에는 약 1억 개의 신경세포가 분포해 있고, ‘미주신경’이라는 통로를 통해 신체의 상태를 뇌로 전달한다. 장이 불편하면 이 신호가 뇌의 감정 조절 영역까지 영향을 주면서 기분이나 정서 상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존 크라이언 교수팀은 우울 증세를 보이는 실험 쥐에게 장에 좋은 유산균을 투여한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고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 경향을 확인했다. 비슷한 실험이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을 때도, 몇 주간 유익균 혼합물을 복용한 그룹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뇌 영역에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되었다.

이처럼 몸의 내부 환경, 특히 소화기관을 중심으로 한 상태는 단순히 배탈 여부를 넘어 정서나 인지 기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 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 모든 메커니즘이 명확히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몸속 환경이 뇌와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과학계의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 보아도, 몸의 컨디션을 잘 돌보는 것이 곧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일 수 있다.

 

 

Chill guy,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밈 중 하나가 ‘Chill guy(칠 가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롭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과 속도에 쫓기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여유를 갖자는 메시지는 온라인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자”는 말도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정말 커피 한 잔이 여유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커피여야 할까? 뜨거운 아메리카노일까, 아니면 시원한 아이스 커피일까?

2008년, 미국 예일대 존 바그 교수 연구팀은 커피의 온도와 인식의 관계를 탐구했다. 참가자들에게 따뜻한 커피 또는 차가운 커피를 들게 한 뒤, 동일한 인물의 첫인상을 평가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따뜻한 커피를 들었던 사람들은 상대를 더 친절하고 다정하게 인식한 반면, 차가운 커피를 든 이들은 다소 차갑고 거리감 있는 인상을 받는 경향을 보였다.

비슷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핫팩을 든 그룹은 타인에게 더 쉽게 배려하고 양보했지만, 아이스팩을 든 그룹은 자신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였다. 따뜻하거나 차가운 물리적 자극이 사람 간 관계에서의 감정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반응은 뇌의 ‘섬피질(insula cortex)’이라는 영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위는 온도, 촉각, 통증 등 신체 감각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감정 공감과 사회적 판단에도 관여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손에 쥔 온도가 일시적인 감정의 온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감정을 전하고 싶을 때, 혹은 스스로에게 여유를 선물하고 싶을 때, 한 잔의 커피를 권해보자. 단, 찬 것보다는 따뜻한 쪽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감정을 전하고 싶을 때, 혹은 스스로에게 작은 쉼이 필요할 때, 커피 한 잔을 권해보자.
쉼이 필요할 때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자.
그 한 모금이, 우리의 마음에 잠시 머물 수 있는 온기를 선물해줄지도 모른다.

 

과학이 풀지 못한 마음의 비밀

우리가 지금까지 밝혀낸 뇌에 대한 지식은 거대한 빙산 중 물 위로 드러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종종 뇌 과학을 공상과학 영화처럼 상상하곤 한다. 사람의 생각을 읽거나 기억을 지우고, 감정을 조종하는 기술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이 섞인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의 뇌 과학은 그러한 환상과는 다르다. 이 분야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뇌 과학은 마인드 리딩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기술로는 누군가의 생각이나 기억을 직접 읽어내거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뇌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관이다. 조금만 손상을 입어도 심각한 후유증이 따르기 때문에, 연구 자체에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지금의 뇌 과학은 특정한 자극이나 상태에서 뇌가 보내는 신호를 측정하고, 그 신호를 바탕으로 인간의 상태를 유추해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직 과학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영역 중 하나가 바로 ‘마음’이다. 놀라운 기술 발전과 정교한 분석 시스템을 보면서, 때로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삶의 고민들이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통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뇌를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 자체를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쉽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뇌는 마음이 작동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관일 수는 있지만, 마음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향해 "당신의 마음이 궁금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과학이 풀지 못한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이 그만큼 신비롭고 소중한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려 할 때, 말보다 먼저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때로는 말없이 곁에 있어준다.
아무리 정밀한 기계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감각,
바로 ‘마음과 마음이 닿는 일’이다.

 

글쓴이 소개


김종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인간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바이오메디컬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뇌 인지과학과 뇌 공학을 연구하며, 생각만으로 기기를 제어하는 기술로 KBS ‘과학으로 보는 세상 SEE’에 출연해 시연을 했다. 현재는 ‘인간의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것’을 연구 목표로 삼고 있다.